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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변화의 한국 사회: ‘2025년 사회통합 실태조사’가 시사하는 이념 대립과 가치관의 대전환
한국행정연구원의 실태조사 결과,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갈등 요인으로 보수·진보 간의 이념 갈등(4점 만점에 3.2점)이 꼽혔습니다. 주관적 이념 성향은 중도층이 감소한 가운데 진보층(27.1%)은 늘고 보수층(29.6%)은 줄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경제 가치관의 변화로, 분배 중심 가치관이 조사 이래 최저치인 31.2%로 감소한 반면 성장 중시(30.3%) 및 성장·분배 병행(38.5%) 의견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아울러 국민의 대기업 신뢰도가 소폭 상승했으며, 일상적인 정보 획득 경로에 생성형 인공지능(AI)이 3.5%의 비율로 처음 등장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1. 심화하는 진영 논리와 다층적 사회 갈등: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립이 남긴 숙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행정연구원이 대규모 표본 조사를 통해 발표한 '2025년 사회통합 실태조사'는 현재 대한민국이 마주하고 있는 다층적인 갈등 구조를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가장 파괴적인 갈등 양상은 단연 보수 집단과 진보 집단 간의 이념 갈등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4점 만점 기준으로 무려 3.2점이라는 독보적인 수치를 기록하며,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연대의 틀이 이념이라는 날카로운 칼날에 의해 얼마나 심각하게 균열해 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이념 갈등의 뒤를 이어 중상층과 빈곤층 사이의 계층 갈등이 2.9점을 기록했고, 노동자와 고용주 간의 노사 갈등이 2.8점으로 집계되어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른 대립 역시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난제로 남아있음을 시사했다. 이러한 갈등이 유발되는 주된 원인에 대해 응답자들은 '이해 당사자들의 각자 이익 추구'(26.3%)를 가장 많이 지적했으며, 뒤이어 '개인·집단 간 상호이해 부족'(21.8%)과 '빈부격차'(19.0%) 순으로 응답했다. 이는 타인에 대한 포용력과 공감대가 상실된 자리에 오직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진영 논리만이 들어앉았음을 반증하는 결과라 하겠다.
2. 요동치는 이념 지형과 중도층의 이탈: 진보의 확장 속 보수의 정체 국면
사회의 거시적인 갈등 구조 속에서 개개인이 주관적으로 체감하는 이념적 정체성 지형도 역시 흥미로운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스스로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 잡힌 시각이라고 생각하는 '중도층'의 비율은 43.4%로 집계되어 여전히 전체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이는 직전 연도인 2024년 조사 결과와 비교해 보았을 때 1.8%포인트(p) 감소한 수치로, 사회적 양극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온건한 완충지대 역할을 하던 중도 성향의 시민들이 점차 양극단으로 흡수되거나 이탈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상대적으로 뚜렷한 진영 성향을 나타내는 계층에서는 명확한 명암이 교차했다. 스스로를 진보층이라고 인식하는 국민의 비율은 전년 대비 2.7%p 증가한 27.1%를 기록하며 가파른 외연 확장을 이뤄냈다. 반면, 자신을 보수층이라고 규정한 응답자는 0.6%p 소폭 감소한 29.6%에 머무르며 완만한 하락세를 보였다. 비록 보수층의 절대적 비중이 진보층보다 미세하게 높게 유지되고는 있으나, 양 진영 간의 격차가 눈에 띄게 좁혀지고 있다는 점은 향후 전개될 선거 국면이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상당한 정무적 변수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3. 분배에서 성장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조사 이래 최저치를 기록한 분배 우선론
이번 사회통합 실태조사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거시적 가치관의 대전환은 다름 아닌 경제 정책의 지향점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던 복지와 균형, 그리고 '분배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입장의 비중이 급격히 쇠락했다. 분배가 중요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년 대비 무려 5.4%p나 급감한 31.2%에 그쳤는데, 이는 한국행정연구원이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래 역사상 최저치에 해당한다. 이는 장기화된 경기 침체와 고물가 기조 속에서 국민이 느끼는 경제적 갈증의 형태가 변했음을 방증한다.
이와 반대로 파이를 더 키워야 한다는 '성장 중심론'은 전년 대비 2.8%p 증가한 30.3%를 기록하며 분배론의 턱밑까지 바짝 추격했다. 가장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 것은 '성장과 분배 모두가 균형 있게 중요하다'고 응답한 복합적 시각으로, 전년보다 2.5%p 늘어난 38.5%로 집계되었다. 결국 국민은 더 이상 단순한 시혜성 복지나 기계적인 부의 재분배 정책만으로는 개개인의 삶과 국가 경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도모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며, 지속 가능한 동력을 제공하는 성장 패러다임의 부활을 강력하게 갈망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4. 주관적 웰빙과 계층 이동의 가능성: 대기업 신뢰도 상승이 내포한 현실적 의미
국민이 스스로 체감하는 삶의 질을 뜻하는 주관적 행복감은 10점 만점에 6.9점을 기록하여, 전년 대비 0.1점 미세하게 상승한 모습을 보였다. 세대별로는 경제적·사회적 활동의 중심축에 서 있는 30대가 7.2점으로 가장 높은 만족도를 보인 반면, 은퇴 이후의 삶과 노후 빈곤 문제 직면에 취약한 60세 이상 고령층이 6.7점으로 가장 낮은 행복감을 토로해 고령화 사회의 그늘을 재확인시켰다. 한편, 개인의 노력에 의해 사회 경제적 지위가 올라갈 수 있느냐는 계층 이동 가능성 문항에서는 본인의 세대적 가능성을 2.7점(4점 만점)으로 평가해 전년보다 소폭 긍정적인 신호를 보였다.
이러한 긍정적 인식의 기저에는 사회 주요 기관들을 바라보는 신뢰도의 미묘한 변화가 맞물려 있다. 교육기관과 의료기관이 각각 2.8점으로 여전히 사회적 신뢰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국가 경제의 중추인 대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전년 대비 0.2점 오른 2.7점을 기록해 금융기관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는 국민이 성장을 정당한 가치로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고용을 창출하고 혁신을 주도하는 경제 주체로서의 대기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과거의 이분법적 반기업 정서에서 벗어나 실용주의적인 신뢰 관계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지표이다. 반면 사법 신뢰도의 경우 경찰(2.5점), 법원(2.4점), 검찰(2.3점) 순으로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5. 미디어 소비 지형의 대지각 변동: 정보 획득 경로에 등장한 생성형 AI의 충격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인지 양식과 정보 소비 행태를 어떻게 뒤바꾸고 있는지는 정보를 얻기 위해 이용하는 매체 조사 결과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여전히 TV(61.6%)와 모바일 메신저(53.3%)가 전통적이고 일상적인 정보 획득의 지배적인 수단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유튜브를 필두로 한 온라인 동영상 매체(32.7%)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20.3%)가 견고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눈길을 사로잡은 대목은 단연 뉴미디어의 새로운 축으로 급부상한 첨단 인공지능 기술의 출현이다.
지식을 습득하고 시사 정보를 수집하는 도구로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고 답한 응답자(3.5%)가 통계 작성 이래 최초로 공식 출현한 것이다. 3.5%라는 수치는 비록 수치 자체만 놓고 보면 초기 단계의 점유율에 불과해 보일 수 있으나, 인공지능이 단순한 기술적 호기심의 영역을 넘어 일반 대중의 일상적인 정보 소비 미디어로 완전히 정착했음을 선언하는 역사적 신호탄이다. 미디어를 평가하는 신뢰도 조사에서 기존 언론과 시민단체가 각각 2.4점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든 상황과 맞물려, 향후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정보의 객관성과 가치 중립성이 미래 사회통합을 결정지을 새로운 기술 정무적 화두가 될 것임을 강력히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