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현지에서 발생한 한국인 대학생 고문 살해 사건으로 인해 해외 범죄 조직의 잔혹한 실태가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가운데, 국내 법원의 판결문을 통해 청년들을 끌어들여 활동하는 범죄 조직의 내부 단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이번에 밝혀진 사례는 '로맨스스캠(연애 빙자 사기) 콜센터'로, 젊은 한국인들이 달콤한 유혹에 빠져 범죄의 늪에 발을 들이는 과정과 비인간적인 통제 환경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산지법 형사3단독의 지난달 선고 판결문에 따르면, 20대에서 30대의 한국인 A씨 등 3명은 로맨스 스캠 방식으로 총 13명의 피해자로부터 119회에 걸쳐 5억 8천여만 원을 갈취한 혐의(범죄단체 활동, 사기 등)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로맨스 스캠은 SNS 등에서 가짜 여성 사진을 이용하여 피해자와 이성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은 뒤 금전을 편취하는 지능적인 사기 수법입니다. 이들이 활동한 콜센터는 캄보디아 바벳과 라오스 비엔티안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으며, 중국인 '총책'이 모든 범행을 총괄하는 국제적인 범죄 조직의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조직원 모집은 주로 기존 직원이 알음알음 데려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항공권과 숙소를 제공하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 코인 관련 일을 해보자"는 달콤한 꾐을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콜센터 직원으로 활동하는 환경은 자유가 박탈된 감옥과 다름없었습니다. 직원들은 컴퓨터 화면을 비추는 CCTV가 설치된 곳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무려 12시간을 강제로 근무해야 했습니다. 근무 규정은 가혹하여, 지각이나 조퇴 시에는 벌금을 내야 했고, 실적이 저조하면 오후 11시까지 야근을 하는 살인적인 노동 환경에 놓여 있었습니다.
콜센터 조직의 운영 방식은 조직원들의 이탈을 철저히 방지하고 보안을 유지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직원들은 휴대전화기 사용이 금지되었고, 옆 사람과의 대화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사무실 컴퓨터에 개인 계정 로그인은 엄격히 금지되었으며, 주변에 본인들이 하는 일에 대해 발설하는 것 역시 허용되지 않는 행동 강령이 있었습니다.
특히 조직원 간의 관계는 철저히 차단되어, 서로의 본명을 모른 채 가명으로 호칭하며 정체를 숨겼습니다. 이는 조직의 와해를 막고, 범죄가 드러났을 때 상위 조직의 신원이 노출되는 것을 원천 봉쇄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이었습니다. 사무실 출입을 위해서는 출입증 카드를 들고 셀카를 찍어 중국인 관리자에게 보내고, 그 관리자의 인증을 받아야만 경비원을 통과할 수 있는 다단계 통제 시스템이 가동되었습니다.
물리적인 감시와 공포는 더욱 심각했습니다. 사무실 건물 입구에는 현지인 경비원 5∼6명이, 각층에는 2∼3명의 경비원들이 총을 들고 경계를 서며 조직원들의 이탈을 방지했습니다. 탈퇴 의사를 밝힌 조직원에게는 미화 1만 달러(한화 약 1천 300만원)를 벌금으로 내도록 강제하여, 금전적인 족쇄를 채웠습니다. 더욱이 하위 조직원들의 임의적인 이탈을 막기 위해 귀국을 원할 시 친구인 조직원 한 명을 인질처럼 남게 하는 잔인한 규정까지 있었습니다. 이들은 다음 사람이 사무실로 들어와야만 귀국할 수 있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심재남 부장판사는 선고에서 "사회적 폐해가 심각하며, 그 조직이 외국에 있어 발본하기도 어려워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이는 해외에 근거지를 둔 조직범죄의 심각성과 국제 공조를 통한 단속의 어려움을 명확히 인식한 것입니다. 법원은 피고인들이 범행을 인정하고, 범죄단체에서 즉시 탈퇴하거나 범행을 중단하지 못한 경위에 다소나마 참작할 사정이 있는 점을 감안하여 징역 2년 4개월에서 3년 2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이 판결문을 통해 드러난 실태는 해외 범죄 조직이 단순한 사기를 넘어 자국민을 감금 및 협박하며 인권 유린을 자행하는 심각한 인신매매 및 조직범죄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정부와 사법 당국은 캄보디아 및 동남아시아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한국인 대상 범죄 조직에 대한 국제 공조 수사를 대폭 강화하여, 이들의 활동 근거지를 발본색원해야 할 중차대한 책임을 안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허황된 유혹에 빠져 범죄의 도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해외 취업 알선 및 불법 코인 투자 권유에 대한 철저한 단속과 예방 교육이 시급히 필요합니다. 로맨스 스캠의 피해자뿐만 아니라, 강요된 환경 속에서 범죄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던 젊은 조직원들 역시 또 다른 형태의 피해자일 수 있음을 인지하고 단호한 처벌과 함께 재범 방지를 위한 사회적 대책도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